조돈문 교수(가톨릭대, 민교협 상임의장)

김상곤 교수(한신대, 교수노조 전위원장)

서유석 교수(호원대, 학단협 상임대표)

황상익 교수(서울대, 교수노조 초대 위원장)

김원열 교수(한양사이버대, 학단협 대외협력위원장)

우희종 교수(서울대, 민교협 서울대지부 총무)

<기자회견문>

정부는 미국 쇠고기 수입 협정을 파기하라

현재 이명박 정부는 취임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100만 명이 넘는 온라인 탄핵 서명자와 촛불을 들고 모인 수 만 명의 10대 청소년들이 이 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교수들은 위기를 극복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현재의 미국 쇠고기 수입 협정을 파기하고 재협상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번 협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가 경제 발전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과학적 사실까지 왜곡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보장을 미국에 맡겼다는 데 있다. 왜 우리가 미국이 정한 신뢰할 수 없는 기준에 따라 먹고 살아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광우병이 최초로 문제화된 영국의 경우에 동물 사료 사용을 정지한 후에도, 4-5년 동안 광우병의 급격한 증가가 있었고 방역을 위해 백만에 가까운 소를 도축하여 목축산업이 붕괴를 가져왔다. 그런데 미국의 강화된 사료 기준에서도 동물 사료를 완전히 금지하지 않았으며, 그것도 시행되는 시점이 아니라 공표하는 시점에서 수입을 재개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초등학생에게 협상을 맡겼더라도 합의해 주지 않았을 조항이라고 본다. 또한 강화된 사료조치의 구체적 내용도 정부의 발표와 달리 당초의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것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우리는 국제수역사무국이 국제적으로 공정하고 과학적이라는 주장을 믿을 수 없다. 우리는 그 기구가 미국의 실질적 영향력 하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미국은 자기 입맛대로 국제수역사무국의 준수 사항을 적용하고 있다. 그 기구의 핵심 보직은 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국제수역사무국에 맡긴 것은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미국의 쇠고기 자본에게 맡긴 것과 다름이 없다고 판단한다. 더욱이 미국의 특정위험부위(SRM) 규정은 유럽연합(EU)의 기준에 비교하면 너무도 허술한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30세 미만에서의 SRM도 수입될 예정이다.

우리는 미국의 소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설명을 믿을 수 없다. 미국에서는 미량으로 주사되는 백신에 의한 광우병의 감염을 우려하여, 60년대 이후의 미국 소 혈청을 사용한 배양 세포를 폐기하고 호주산 소 혈청으로 키운 세포로부터 백신을 개발하는 사업을 미국 FDA의 주도하에 시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의 1억마리 소 중에서 광우병 소 3마리만이 발견되었다”라는 언술은 대표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비과학적 언술이다. “2,000마리 중에서 1마리 꼴로 검사해서 광우병 소가 3마리 발견되었다면, 1억마리 소 중에서는 6,000마리의 광우병 소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어야 했다. 또한 최소한 30개월 이상의 소에 대하여 전수 검사를 실시하지 않는 미국의 상황과 더불어 미국 도축장에서 광우병 의심 소를 검사도 하지 않고 그냥 죽여버리는 경우가 있었다는 보도도 있다. 정부는 어떻게 이런 경우가 앞으로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또한 정부는 한국 땅에 앉아서 어떻게 미국 축산업자들이 광우병 의심 소를 보고하지 않은 채 죽여서 산에 묻어버리는 경우가 없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작다는 주장도 국민을 호도하는 비과학적인 주장이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광우병 의심 사망자의 뇌를 부검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으므로, 실제의 광우병 환자수는 현재까지 드러난 것 이상으로 많을 것이라는 것이 의학계의 보편적 의견이며, 또한 임상증상이 없지만 감염되어 있는 사례도 보고되어 있다. 지역과 시간에 따라 발병확률이 달라지는 것이 전염성 질병이다. 즉 어떤 나라에서 광우병 환자가 발생하는 특정 조건에서는 그 나라 사람들이 광우병에 걸릴 조건부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바로 이렇게 발병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광우병 위험 지역으로부터 쇠고기 수입을 철저하게 통제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소의 검역을 철저하게 하고, 확실하게 표시하고, 단속을 통하여 완벽하게 관리하겠다고 한 약속을 믿을 수 없다. 정부는 모든 식당에 원산지 표기를 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정부는 불량 제조식품 유통조차도 근절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철저하게 검역하고 완벽하게 원산지를 추적하려면 수만 명의 공무원을 새로 채용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런 조치를 수행할 예산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왜 미국 소 수입 때문에 필요하게 된 조사와 검역 때문에 귀중한 우리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여야 하는가? 자기 국민의 세금으로 남의 나라 쇠고기 수출업자를 보조하는 나라는 주권을 가진 나라라고 볼 수 없다. 소와 쇠고기의 이력을 완벽하게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은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하기 때문에, 모든 소와 쇠고기에 대하여 추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그 비용도 엄청나게 든다. 철저하게 검역하고 완벽하게 관리하는 데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정부의 약속은 신뢰할 수 없는 약속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비용 편익을 계산해 보더라도 철저하게 검역하고 완벽하게 관리하는 비용을 포함시키면 미국산 소는 결코 싼 소가 될 수 없고, 미국 위험소의 수입은 편익보다 비용이 훨씬 더 크다.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대대적인 광고를 통하여 미국 사람들도 대부분 미국소를 먹는다고 광고를 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한국에서는 쇠고기 표시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 소비자들을 위한 쇠고기를 미국소비자들을 위한 쇠고기처럼 관리해 줄 것이라고 신뢰할 수 없다. 자본주의 역사를 통틀어서 선진국들이 자국민에게는 안전제품을 제공하고 후진국에는 위험제품을 수출한 사례는 수없이 많이 있다. 심지어 아편을 수출하기 위하여 전쟁까지 일으킨 역사도 있다. 미국에서는 위험부위 시장이 거의 없지만 우리나라에는 광범위한 시장이 있다. 미국에서는 비싼 쇠고기가 미국산이지만 한국에서는 비싼 쇠고기가 한국산이다. 이로 인해서 한국에서는 원산지나 나이를 속이면 막대한 이득을 보게 되는 유인체계가 작동하고 있다. 미국 쇠고기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 미국민이 먹는 것과 다른 나이와 부위의 소를 수출할 수 있다면 폐기처리 비용도 들지 않고 엄청난 추가 이윤이 보장된다. 한국정부는 엄청난 돈이 되면서, 협정문에 보장된 합법적인 장사를 어떻게 막겠다는 것인가? 또한 수출할 때 연령 표시 의무를 빼버린 것은 미국내 시장과는 달리 한국시장에는 30개월 이상 소를 많이 수출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 표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미국 정부는 미국 소비자들이 소비하는 소의 도축과정에 대한 조사권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한국 소비자들이 소비하는 소의 도축과정에 대한 조사권이 없는 비대칭적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한국의 주권 양도적 협상과 미국의 주권 약탈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행동이 합쳐진 결과이다. EU를 포함한 국제 기준으로 볼 때 미국소는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특히 미국의 행동은 미국소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정보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국제수역사무국의 주요 보직을 광우병소가 발생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맡김으로써 그 기구의 국제적 신뢰를 떨어뜨렸다. 또한 국제수역사무국에는 미국에서 광우병소가 발생하고 난 뒤에 미국에게 유리하게 기준을 변경하였다. 이러한 행동은 국제수역사무국이 사실상 미국이 좌우하는 기구라는 정보를 세계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미국 도축장이 안전하다면 수입국에게 보여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에게 조사권을 주지 않음으로써 미국 도축과정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였다. 도축장을 보여주지 않는 미국의 행동이 미국 도축과정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숨은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검역주권을 완전히 빼앗아 버림으로써 대규모 저항을 초래하였다. 한국에서 대규모 저항이 일어났고 대통령 지지도가 반토막이 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어떤 다른 나라 정부도 한국과 똑같은 조건으로 협정을 체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지나친 요구가 미국 자신의 장기적 이익까지도 손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불안이 가라앉지 않자, 정부는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하고 조사단을 파견하고 전수검사를 하는 추가조치를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쇠고기 협정에는 우리 정부의 수입중단권, 미국 내 도축장에 대한 조사권, 우리나라에서의 전수검사권이 없다. 권한이 없는데 조치하겠다는 약속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정부가 진정으로 그렇게 조치할 의향이 있다면, 15일로 예정된 고시를 연기하고 재협상을 통하여 그렇게 조치할 수 있는 권한부터 확보해야 한다. 나중에 협정이 발효된 이후에 정말로 정부가 그런 중단조치를 하면,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 같은 것들로 인해서 수입 예상 물량 전체를 수입도 안 하면서 돈으로 배상해 주어야 할지 모른다.

과학적으로 광우병은 전염성인 것이 확실하며, 국민들의 요구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일본 수준이나 아니면 적어도 이번 협상 전 조건으로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국민들의 이러한 요구를 비과학적이니, 미신이니 하면서 과학적 사실을 호도하고 국민을 기만하려고 드는 오만한 정권은 국민들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국민들이 요구하면 그 뜻에 복종하는 것이 대통령의 책임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느 나라가 자기 국민을 해치는 고기를 사다 먹이겠느냐”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바로 이명박 정부가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미국이 협상할 때 기대하였던 대로 강화된 사료 조치를 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화된 사료 조치를 취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한국 정부의 영어 해석의 착오와 미국의 사실상의 기망 행위가 함께 일어난 것이다. 착오에 의한 것이든 기망에 의한 것이든 이번 협정은 파기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재협상을 명령하여야 한다. 우리가 착오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굴욕적이고 무기력하게 판단하지 말고, 잘못된 협정을 파기하라고 용감하게 지시하여야 한다. 협정이 발효되고 난 뒤에 파기하는 것은 파기비용을 더 크게 만들 뿐이다.

신뢰의 상실은 시장이 붕괴하는 역선택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이미 사람들은 한국 쇠고기와 미국 쇠고기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쇠고기 자체를 먹지 않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쇠고기 음식 시장이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자영업자들에 대한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이와 같이 축산업뿐만 아니라, 음식 자영업과 식품산업도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악화되면 화장품과 약품 산업도 영향을 받을 것이고, 한국 제품의 수출에도 지장이 있을 것이다. 신뢰의 상실은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IMF 경제 위기의 근본원인이 신뢰의 상실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요구한다.

- 첫째, 정부는 쇠고기 수입 협정을 파기하라.

- 둘째, 정부는 협상 책임자를 처벌하라.

- 셋째,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죄하라.

2008년 5월 13일

서명 교수 및 연구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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