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호근, 안병욱, 손호철 교수 등이 보인다.

지난 5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6월항쟁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마지막 프로그램은 ‘한국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종합토론이었다. 박진도 충남대 교수의 사회로, 손호철 서강대 교수의 발제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이정우 경북대 교수, 장훈 중앙대 교수 등 역량 있는 중진급 학자들이 나섰지만 아쉽게도 시간부족으로 충분한 토론이 되진 못했다.

손 교수는 이날 발제를 통해서 “민주화 20년을 맞은 지금의 한국은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87년 이후 참정권 확대, 김영삼 정권의 군정종식, 김대중 정권의 민주화운동 보상법 제정, 노무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 제도화 등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등 그간의 역사적 과정이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군사독재세력과의 연합정권으로 과거청산의 한계를 지녔으며, 아직도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 수준으로 판단했다. 국가보안법으로 연 평균 30명,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으로 1백여명에 가까운 양심수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대표적인 예.

이어 지난달 ‘한겨레신문’을 인용, ‘자본’을 소지하고 ‘농활보고서’를 인터넷에 올렸다는 혐의로 대학생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하고, 지난 5월 ‘꽃파는 처녀’과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주민중혁명’ 등을 판매한 혐의로 서점주인을 구속영장을 신청한 시대가 바로 노벨평화상과 참여정부를 거친 민주화의 현주소라고 손 교수는 비판했다.

<한국 정치적 민주주의의 역사적 추세>

	1987년 이전	1988-2002년 (민주화 1기)	2003년 이후 (민주화 2기)
인신구속과 고문의 자유	저	중--->고	고
언론의 자유	저	고	고
사상, 표현의 자유	저	중	중
집회의 자유	저	고	중
참정권(1):대통령직선	저	이고	고
참정권(2):지방자치	저	이고	고
과거청산	저	중	고
위임민주주의*	이고	이고	저
정당민주주의 정당정치의 제도화	중 중	저 저	고 저
지역주의*	저	이고	고

출처: 손호철 교수, ‘한국민주주의20년’(2007)

또한 87년 이후 악화된 점으로 ‘지역주의’와 ‘사당정치’, ‘위임민주주의’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짚었다.

여기서 1985년 총선과 2000년 총선을 비교했는데, 1985년 여당이었던 민정당이 호남에서도 많은 의석을 차지했고, 야당인 신민당도 호·영남에서 골고루 차지했지만 2000년에서는 여당과 야당의 좌석이 좌우로 경계가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1971년, 1997년, 2002년 대선을 비교하면 현재와 가까울수록 지역균열지수가 급격하게 올라간다는 점을 재차 근거로 들었다.

87년 이후 정당정치와 정당민주주의를 후퇴하게 한, 이른바 3김에 의한 사당정치와 대통령이 국회의장을 낙점하는 위임민주주의 혹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 비판과 함께 최근 여권 내 통합신당 창당 움직임을 들어 정권만 바뀌면 정당이 새로 생기는 악습은 변하지 않아 정당제도는 초보적 수준이란 점도 지적했다.

또한 손 교수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김대중 정권이 미국식 신자유주의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후부터 빈부격차가 급속히 악화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노동자 경영참여를 제도화 공언 변화, 집권 후 변화하는 등 민주화가 가장 낙후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대외적 민주주의도 주한미군 주둔과 국군통수권, 블평등 SOFA협정 등을 제시하며 열악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손 교수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최근 일어나고 있는 박정희 향수에 대한 원인으로 △민주화 진영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도덕성 시비 △ 외환위기와 코드인사, 비판적 여론에 대한 오기 대응. 그리고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도 국가보안법 등 개혁법안을 주도하지 못한 무능 △ 이라크파병이나 노동자 분신에 대한 강경대응, 한미FTA 등 보수적이면서도 스타일만 급진적인 독선과 오만 △ 북한 인권 문제를 문제시하는 수구냉전세력과 이에 침묵하는 민주화운동 진영의 침묵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접근방식 등의 북한변수 △ 김대중 정부 이후 수용한 신자유주의 등을 들었다.

그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서민들이 파시즘을 지지했음을 상기해야 하며, 현재 한국은 신자유주의에 의한 사회적 양극화가 해결되지 않는 한 박정희 향수와 서민들의 극우정권 지지는 지속돼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고 지적하며 발제를 마쳤다.

하지만 토론에서 장훈 중앙대 교수는 “진보정치의 위기를 민주주의의 위기로 과장 표현했다”며 곧바로 반론했고,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87년 체제가 진보진영 담론으로 우상화 하는 듯 느껴지는데, 그러한 열망을 실현시키기에 객관적 조건이 따르지 못했다”라고 논했다.

이어 현 정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복지분야 예산이 경제예산을 최초로 앞서고 부동산 정책 등 반신자유주의적 성과가 많은데도, 손 교수는 한계와 위기를 너무 부각시켰다”고 반박했다.

이어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지난 20년간 민주화운동 세력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면이 많았고, 87년에 대해 평가하는 지식인은 많아도, 우리의 근현대사에 항쟁이나 혁명 이후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와 지식인이 없었다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장 교수의 지적에 대해 “진보정치의 위기를 민주주의의 위기로 생각하지 않지만, 한나라당이나 뉴라이트 등장과 관계없이 자유권이 축소되는 쪽으로 나가는 것을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반박했으며, 송 교수의 언급에 대해서는 “객관적 상황으로 봐도,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국보법, 집시법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을 봐도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었다”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종합토론을 마무리 하며 박진도 교수는 “10년전 10주년 기념 종합토론에서 사회를 봤지만, 오늘 토론의 초점이었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10년 사이의 큰 변화인 것 같다”라며, “현 정부가 진보정부였고, 진보정치를 했다라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말하며 토론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