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단체협의회 성명서 / 2008년 5월 6일>

이명박 정부는

학문연구 활동에 고삐를 매는 조치들을 즉각 철회하라
- 국책연구기관장 사퇴강요를 규탄하며 -

학술단체협의회는 학문연구 활동에 고삐를 매려는 이명박 정부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어느 시대건 어느 나라건 그 어떤 정부도 학문연구 활동에 족쇄를 채울 수는 없었으며, 결국 학문연구 활동을 탄압했던 정권은 하나같이 엄중한 역사적 응징과 함께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기업친화적인 강력한 경찰국가의 억압적 징후를 사회 전반에 걸쳐 점점 농후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미 운하반대교수모임에 참여한 교수들에 대하여 이른바 정치사찰을 행함으로써 독재정권의 망령을 되불러낸 바가 있었다. 학술단체협의회는 이에 대하여 정치사찰 중단은 물론 국민 다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차근차근 민주적 여론을 물어가며 찾아보길 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진지한 반성은커녕 국책연구기관장들에게 일괄 사표를 종용하여 지난 4월 29일까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과 그 산하 19명 가운데 18명이 국무총리실에 사표를 제출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 술 더 떠 정부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기초기술연구회와 지식경제부 산하 산업기술연구회 등 과학기술 분야의 26곳 정부출연 연구기관장들에게도 일괄사표를 내도록 강요하여 이를 관철시켰다. 이러한 정부의 사실상 사퇴 강제는 헌법상 학문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며 이를 구체화한 법률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헌법은 개인에게 국가 간섭 없는 학문 자유를 보장함은 물론 국가로 하여금 학문 활동을 보호하고 장려하되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문화국가 책무를 명하고 있다. 이 중 연구 자유는 학문 자유의 본질적 부분인 동시에 중핵이다. 그러기에 설령 국책연구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정부는 재산상 출연을 할 뿐 연구 활동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은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에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같은 법률이 연구기관장들에게 3년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은 그 당연한 담보장치이다.

올바른 국가 정책을 수립하는 데 기여하기 위한 연구 활동은 학문이 그러하듯 자유로운 연구에 터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연구 활동에서의 학문 다양성과 정책 자율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됨은 물론 정책 연구의 일관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 혈세의 막대한 낭비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국민을 호도하는 여리꾼으로 연구자들을 타락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지경에 이르러 우리는 국가정책 연구기관이 그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부 시책을 선전하는 나팔수로 전락하는 전체주의적 국가의 전조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 활동이 그러하듯 열려 있으면서 비판적인 연구 속에서만 새롭고 올바른 정책을 발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적어도 치명적인 오류를 피해갈 수 있다. 예컨대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운하에 반대하는 전국 교수모임에 2천명을 훨씬 넘는 수의 교수들이 참여하고 지금도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것은 국가 정책이 국민, 국가, 국토 그리고 후대에까지 막대한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는 것이기에 중대한 국가 정책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철저한 검증이 치열한 토론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많은 교수들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국민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는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온 나라 방방곡곡으로 퍼져가고 있다. 광우병 원인으로 가장 유력한 것은 소에게 쇠고기가 들어간 사료를 먹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칫 독립성과 자율성 그리고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결과가 국가정책에 이와 유사한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광우병에 감염된 소는 그 뇌에 스펀지 모양의 공포가 형성되어 빛이나 소리와 같은 조그만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쉽게 흥분하여 뛰어다닌다고 한다. 미국 축산업자의 소임은 소가 광우병에 감염되지 않도록 철저히 예방하고, 감염 가능성이 높은 소는 과감히 폐기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자 국민의 소임이 자신과 후손에게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정책은 물론 정권에 대해서 엄정한 응징을 가하는 민주주의적 역량을 발휘하는 일이듯이. 이에 학술단체협의회는 이명박 정부가 국책연구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함은 물론 진정 국민 다수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일에 일로매진할 것을 엄중히 촉구하는 바이다. 주권자 국민에게 경쟁자는커녕 항명자도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2008년 5월 6일

학술단체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