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 사태 관련 교수학술4단체 기자회견문>
진주의료원 폐쇄는 ‘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공격이며 국민의 시대적 요구에 반하는 것이다.
작금의 진주의료원 사태를 보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다. 지난 2월 26일 홍준표 경남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을 전격적으로 발표한 이후, 우리 사회는 이를 둘러싼 국민적 논란에 직면하고 있다. 이 사태는 시작부터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취임 70일도 안된 홍준표 지사가 10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진주의료원을 한 차례 방문도 없이 비밀리에 폐업 준비작업을 진행하여 기습적으로 발표하였다. 홍준표 지사는 이 폭거를 밀어붙이면서 그 명분으로, 타 지방의료원의 80%밖에 안 되는 임금수준을 감내하고 심지어 거의 초인적인 희생과 봉사 정신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지난 5년간 임금을 동결하기까지 했던 노조를 ‘강성노조’로 매도하면서 그의 폭거를 정당화했다. 또한 병원 신축이전에 따른 공공지원의 부족, 지역 거점 공공병원 역할 수행에 따르는 운영손실 등의 요인과 지역공공의료기관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적자’라는 명분을 내세워 폐업을 정당화하였다.
이 폐업 결정은 진주 의료원 관련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경남 지역사회 및 전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누가 보아도 전횡과 폭거이기에 국민적 반대가 분출하고 각계각층의 항의가 잇따랐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홍준표 지사와 보조를 맞추는 경남도의회의 새누리당 의원들은 4월 12일 문화복지위원회에서 야당의원들을 폭력으로 진압한 채 날치기로 진주 의료원 폐업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제 오는 18일 진주의료원 폐쇄를 위한 '경상남도 의료원 설립 및 운영조례 일부 개정안'이 도의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홍준표 지사와 경남도의회의 진주의료원 폐업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첫째,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비중은 턱없이 낮기에 외려 확대해야 한다. 의료기관의 숫자를 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비중은 유럽 복지국가들의 경우 60~90%, 전 세계적으로 민간의료의 천국이라 여겨지는 미국의 경우에도 27% 수준인데, 한국은 6.4%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는 우리 공공의료의 수준이 낮은 수준을 넘어 가히 국가적 수치라고 말해야 할 정도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지방공공의료기관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 지방 공공의료기관은 의료취약계층을 위한 안전망이자 표준 진료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의료사각지대의 국민들을 돌보는 중요한 사회복지기제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진주의료원 폐업결정은 가히 반시대적인 것이다.
둘째, 진주의료원 폐업시도는 비밀리에 추진한 밀실행정의 대표적 사례이자 절차상 민주주의의 원칙을 심대하게 위반한 반민주적 폭거다. 홍준표 지사는 폐업을 발표할 때까지 이를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하였다.진주의료원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조례 개정의 권한을 가진 도의회와의 협의도 없이, 심지어는 경상남도 내 보건담당부서인 보건행정과의 직원들조차도 폐업 발표 당일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밀리에 추진하였다. 전국민적인 반대와 재론을 요구하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이제는 한 술 더떠서 경남도의회의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날치기 통과를 강행하였다.
홍준표 지사는 과거 한나라당의 대표재직 시부터 돈키호테식 행위방식으로 많은 갈등을 촉발한 인물이다. 326병상, 216 명의 직원을 보유한, 103년의 역사의 대형병원의 폐업을 추진함에 있어, 그 흔한 공청회 한 번도 개최하지 않고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되는 일방적인 폐업시도과정은 홍준표 경남지사의 돈키호테식 행위방식과 독불장군식 불통행정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87년 이후 35여년의 민주화의 궤적을 밟아온 한국사회에서 이런 수준의 절차적 비민주성이 용인된다고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뿐이다.
셋째, 이번 폐업 시도는 서울과 지방의 의료 격차를 심화하며 주변에서도 또 주변인 의료약자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한국 사회의 중요 문제는 지역격차이며 서울과 지방의 의료 격차 또한 이를 떠받치는 요인이다. 이번 진주의료원 폐업은 수도권과 지방의 전반적인 지역차별, 그 일부로서의 의료격차를 확대재생산한다. 나아가 진주의료원의 폐업은 주변에서도 또 주변을 형성하고 있는 지방의 의료약자들과 환자들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행위이자, 고통분담해온 지역의 직원들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행위이다. 이에 중앙정부의 지원을 통해서라도 이러한 악화의 흐름을 막는 것이 국가가 존립할 수 있는 당연한 의무이다.
넷째, 이번 진주의료원 사건은 박근혜정부가 지난 대선 기간에 제시한 전반적인 복지확대의 공약기조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한편에서 ‘중증질환 치료비의 국가부담’을 포함하여 ‘맞춤형 복지’를 트레이드마크처럼 내건 박근혜정부가, 다른 한편에서 이러한 ‘반복지적’ 폭거를 용인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우리는 박근혜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이명박정부는 경영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절대시하여 다양한 부문에서 시장논리를 확대해가고 공공영역을 축소·폐지해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런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만능주의적 행태가 전국민적 분노와 이반을 낳았고 그 분노와 이반을 봉합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지난 대선 기간 박근혜 후보의 복지공약도 확대되었고 그런 속에서 박근혜 정부도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박근혜정부가 홍준표 지사의 반국민적인 폐업시도를 묵인하고 허용한다면, 박근혜정부의 복지정책 전반에 대한 국민적 신뢰성은 급락할 것이며, 박근혜정부의 복지정책을 허구적이라고 비판해도 아무런 항변을 할 수 없는 사태가 도래할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의료법 59조에 명기되어 있는 ‘업무개시 명령’ 등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서 이를 막아야 하는 것이 대선공약을 지키고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적자를 이유로 지역의료원을 폐업시킬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지역의료원이 지역공공기관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적자라는 단 하나의 편협한 기준에 의해서 지방공공의료기관을 파악하거나 평가해서는 안 되며, 공공의료의 공익적 역할, 지역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지역격차의 완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공공의료기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평가하고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다각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지방 공공의료기관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하여 중앙정부가 지역개발기금 차입금 상환을 지원한다거나, 공공병원 역할을 수행함에 따라서 발생한 적자를 보전해준다거나, 의료급여환자의 진료비의 차액을 보전해준다거나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정책을 차제에 확립하여 지방공공의료기관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지방의료원과 같은 공공의료기관이 지역주민의 요구와 기대에 충실히 부응하도록 하기 위해서, 병원의 경영진이 지역사회 주민들과 함께 병원 운영 전반에 대해서 폭넓게 협의하는 ‘민주적 가버넌스’ 구조를 안착시키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이제 중대한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 교수 4단체는 이 사안이 대단히 중요하고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를 의료의 공공성, 나아가 한국사회 전반의 공공성을 옹호하기 위한 과제로 파악하고, 이번에 기자회견을 통해 이 폭거가 중단되기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아울러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우리의 요구를 집약하고자 한다.
1. 홍준표 경남 지사는 진주의료원 폐업 시도를 즉각 철회하라.
2. 경남 도의회는 문화복지위원회의 날치기 조례통과를 사과하고 본회의 통과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3. 박근혜 정부는 진주의료원 중단을 지방정부의 문제로 방치하면서 이를 묵인하지 말고 즉각적으로 이의 해결책에 나서라.
4. 중장기적으로 지방공공의료원의 적자보전, 지역주민의 의료요구에 부응하는 안정적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지원방안을 강구하라.
2013년 4월 16일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조희연, 이도흠, 전광희, 최영태, 김규종)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 유병제)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 김인재)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 정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