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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인문사회과학 분야 연구비 지원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전향적으로 바뀌어 왔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연구비 지원 규모 또한 양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마치 그간 연구비 지원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인문사회과학 분야 연구자들의 원성을 한꺼번에 만회라도 하려는 듯 연구비 지원규모가 대형화 되고, 따라서 주로 개별연구보다는 집단연구 중심으로 연구비가 지원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연구성과의 산출과 다양한 학문적 관점을 갖는 신진연구인력의 양성이란 측면에서 다시 한 번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HK사업의 경우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정부로부터 연간 10억 원~15억 원을 받는 대형 지원대상이 6곳, 연간 5억 원~8억 원을 지원받는 중형 규모의 연구소는 28곳에 이르렀다. 책임교수를 정점으로 박사급 연구원과 석박사 과정생 연구보조원 등 100여 명의 연구자들이 거대한 연구조직을 구성하는 곳도 생겨나게 되었다. 올해 시작된 SSK사업의 경우에도 1차 연도인 올해는 1억 원으로 시작해서 3년 뒤 중형(연간 3억 원 내외), 다시 3년 뒤 대형(연간 7억 원 내외) 등으로 지원받는 연구집단의 규모를 키워갈 계획이다.
대형과제, ‘규모의 비경제성’ 커졌다
집단연구 중심으로 연구비 지원 규모가 대형화하면 많은 개별연구자들에게 연구비가 배분되는 경우보다 행정적 수고를 줄일 수 있고 연구성과에 대한 비교, 평가가 수월해질 뿐만 아니라 연구집단 간 경쟁을 통해 지원에 따른 책임을 명확히 물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 못지않게 연구비를 지원받는 개별 연구자 입장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작용 또한 심각하다.
우선 연구비 규모가 커지고 연구조직이 대형화함에 따라 당연히 행정적 업무와 이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대부분의 사업이 연구소 혹은 연구조직의 사업성과에 대한 연차별, 단계별 평가를 통해 지원규모 및 지원의 계속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연구 이외에 교육, 홍보, 학술대회 및 국내외 연구네트워크 조직 등 높은 평가를 획득하기 위한 사업들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데 많은 시간이 투여되고 있다. 또한 매년 한 차례 이상 제출해야 하는 연차별, 단계별 보고서의 작성과 한국연구재단 등으로부터 수시로 요구받는 이러저러한 자료제출 요구에 연구자들은 항상 시달릴 수밖에 없다. 지원 규모가 커질수록 행정적 노력과 비용 또한 커질 수밖에 없는 ‘규모의 비경제성’이 나타났다.
둘째, 개별 연구자가 대형화된 사업단을 통해 연구비 지원을 받는 한 자신의 독창적 연구보다는 지원사업과 사업단이 요구하는 연구주제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또한 사업단은 연구성과를 관리하기 위해 매년 개별 연구자의 양적 연구성과를 체크하고 더 높은 연구성과를 독려할 수밖에 없다. 모든 연구성과가 사업단이나 연구조직의 양적 성과지표로 환원돼 평가되는 상황에서 개별 연구자가 연구의 독창성과 자율성을 발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장기ㆍ대형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개별 연구자 자신은 장기연구를 수행하기 어려운 역설이 나타나게 된다.
셋째, 대규모 연구비가 지원되고 지금 당장은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비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연구자들의 신분과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불투명하다. 개별 연구자들이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갖고 안정적으로 연구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5년 혹은 10년 정도의 지원이 있은 이후 자신이 속한 연구조직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예상이 가능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집단연구의 목표 명확히 해야
지금 당장의 연구성과보다는 학교의 장기적인 지원 및 육성의지, 그리고 관련 학과의 장기적 발전방향과 연계된 연구소나 사업단의 발전방향 등이 중요한데,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연구자들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금 당장의 대규모 지원에도 불구하고 개별 연구자들의 신분과 미래는 늘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현재의 대규모 연구지원 사업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많은 연구자들의 생계를 유지해주기 위한 수단으로밖에는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현재 집단연구 중심의 대규모 연구지원 사업은 대부분 대학 연구소의 역량 강화와 국내외 연구자들 간 협력의 활성화, 그리고 역량 있는 신진연구인력의 육성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장기적으로 이러한 목표들을 성취할 수 있을지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집단연구 중심의 대규모 연구지원 사업의 일차적 목표가 대학 연구소의 육성 및 집단연구의 활성화에 있는지, 아니면 신진연구인력의 육성과 기초학문의 보호에 있는지가 불분명하다. 대학 연구소의 육성과 집단연구의 활성화를 통해 신진연구인력의 육성 또한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의 결과로만 보자면 정부 지원이 지속되지 않는 한 대학연구소 등 대규모 연구비 지원을 받고 있는 대부분 연구조직들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개별 연구자들의 독창성과 창의성 또한 충분히 발휘될 수 없다.
이런 측면을 고려해볼 때, 정부의 연구비 지원 방향과 목표를 좀 더 세분화하고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지금처럼 전임교수와 비전임 교수(연구교수)를 하나의 연구조직에 묶어 집단연구 중심으로 지원하기보다는 각각 분리해서 지원할 수 있다. 대학 연구소 육성사업 등 집단연구 중심의 지원은 전임교수 위주로 함으로써 이들에게 보다 충분한 연구동기와 인센티브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비전임 교수와 연구자들에게는 예비 전임교원으로서 학과 또는 대학 소속으로 5년 정도 안정적인 조건 하에서 연구와 교육을 담당토록 함으로써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고 이를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어떨까.
신진연구인력에 대한 지원을 전임교원의 충원과정과 직접적으로 연계시킬 때 개별 연구자의 연구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하면서도 대학사회의 일원으로 이들에게 강한 책임감을 부여할 수 있는 장점이 크다. 대학과 학과는 새로운 예비 교원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투명한 경로를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 진정한 성과가 있으려면 황폐해진 국내 학문 생태계의 복원과 멸종돼 가는 학문적 후속세대 양성에 대한 모든 연구자들의 절박함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김정주 경상대·정치경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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